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도현의 어머니가 다녀왔다는 세상의 끝에 가본 적이 있다. 2016년 파리 생활을 마칠 즈음이었다. 800여 킬로미터 순례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넘어, 삼 일 정도 더 가야하는 곳이다. 걸어서 다다라야 하는 곳에 나는 비행기로, 버스로 갔다. 그냥 궁금했다. 그때의 나는 알고 싶었다. 사람들은 왜 세상의 끝 같은 곳에 가고 싶어 하는지, 거기서 쉰내나는 자기 옷가지를 태우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제 발로 걸어서 그곳에 다다르지 않은 자에게는 답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여러 가지 짐작할 수는 있어도,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옷가지 타는 냄새를 맡고, 지는 태양 앞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세상의 끝>이라 쓰인 엽서를 샀다. 그리고서 파리로 돌아갔다. 며칠 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때 내게 세상의 끝은 파리였는데, 그 말을 믿어주지 않을 사람들에게 대신 전해줄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내게 이 작업은 <세상의 끝>에 다녀온 경험과 유사하다. 처음 작업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 몸집을 키워 나갈 것이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작업자인 나조차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며칠 밤을 지새웠는지 모르겠다. 엄마를 논하기 위해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인터뷰이의 삶을 몇 자로 축약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혹은 실제보다 더 감상적으로 굴어 확장해버리지는 않는지. 그런 것들이었다. 이후 나는 이런 판단을 내렸다. 결과물을 내기에 앞서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이와 같은 우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원칙을 세우자고. 첫 번째는 이미 공고한 가치에 동조하는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쓸데없는 위로와 감상적인 말로 지면을 채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를 지키고자 최대한 노력했지만, 백 퍼센트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업에 대해 스스로 던졌던 질문에는 답을 찾지 못했는데, 내가 걷지도 않고서 세상의 끝에 가고 싶었던 진짜 이유를 찾게 되었다. 세상의 끝은 나의 끝이며, 내가 끝나면 세상도 끝난다. 2016년 세상의 끝에 이른 기분이었던 나는 다른 사람의 끝도 보고 싶었다. 쉰내, 타오르는 연기, 조용한 울음 소리 같은 장면. 그 속에서 이야기를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도시가 세상의 끝이었다고 말하면 믿지 않을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다른 이야기를 빌려 와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뷰를 받아보고, 그들의 삶을 다시 이야기로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습게도 얼굴 한 번 마주보지 못한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여태 나를 힘들게 한다. 때문에 바라건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글을 덮어놓았으면 한다. 나는 당장의 내가 더 쓸 수 없을 때까지 썼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닿을 수 있는 끝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다시 삶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인간의 삶은 구술된 이야기를 넘어 실재한다.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된 삶은, 특히 기이하고도 독특하고 불가해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힘을 갖고 있다. 누군가 그들의 삶 혹은 이야기를 읽었을 때,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해해보려는 용기가 생기기를 바란다. 용기는 의지로, 의지는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므로.

 “내 삶도 이야기고, 네 삶도 이야기야. 성경도 이야기야. 모든 걸 이야기라고 생각하렴. 사람은 이야기가 있으면 살 수 있단다.”어느 오후에 그 말을 들었다. 지금의 내 기분을 그것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빌려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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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어느 일요일의 일기.

 


오늘 성당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자매님, 그러다 벌 받아요.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받아요. 


 내용만 따지고 보면 편지랄 것도 없는 작은 쪽지였다. 하얀 편지지에 두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을 제외하고서는 너무나 공허한 여백이 있었다. 그 공백은 말하고자 한 것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듯 했다. 모래사장에 적힌 다잉 메시지처럼, 목울대에 걸려 터져 나온 마지
막 유언처럼 정제되어 순수하고 솔직한 말. 많은 것을 적으면 정작 중요한 말은 뒤로 숨는다. 사
라진다. 삼키게 된다.
 나는 그런 말이 그리웠다. 그래서 ‘벌 받아요’, 가 천박한 조언이 아니라 순수한 말이라고 느껴
졌다. 어쩌면 나는 평생토록 그런 것을 지나치게 그리워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 미친 광신도
여자가 왜 그런 편지를 전해 주었는지는 알고 있다. 그녀는 우리 아이를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다.
아이는 요즘 종이 접기에 빠져 있다. 미사를 보면서도 열심히 종이만 접는다. 그 여자는 그것을
걱정한다. 나는 아이가 열심히 접은 육식 공룡, 외계인의 얼굴과 같은 것을 하나하나 펴 본 적도
있었다. 이제는 멸종되었거나 인간의 상상 속에서나 존재했던 것들.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을까
봐, 나 또한 두근거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애가 아니다. 끔찍할 때가 있다. 사람들
머리에서 상상해낼 수 있는 최악의 상 같은 것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떠올려보면. 그 애는 그
런 애가 아니다. 지독하게 핍진하지만 슬프도록 조촐한 경험이 만들어낸 상상. 그 속에 갇혀버린
아이는 악을 쓰고 절규한다. 아이가 접은 어떤 것에도 활자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죽어 없어
진, 있지도 않았던 생물들의 외양을 모방한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그러한 상상이야 말로 죄악일 것이다. 가장 뻔한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인간이기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같은 신을 믿는 우리는 신이 두려워하라고 가르친 죄악을 더 당
당히 저지르며 산다.
 나는 아이가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다. 믿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 언젠가
아이가 원하는 색의 종이가 없어서, 내가 주말 저녁 연 가게들을 샅샅이 뒤져 색종이를 찾을 때
였다. 나를 사랑하는 이는, 내가 나의 아이를 위해 하는 행동을 마음 아파하며, 아이에게 원망의
말을 울부짖었다. 너는 뭐가 도대체 그렇게 힘들다는 거니, 왜 그렇게 죽을 듯 악을 쓰고 우는 거
니. 그들이 그리하는 것도 이해한다.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죄가 아니라 나의 죄
라고. 누구도 그것을 죄라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것이 나의 죄임을 안다고.
 아이가 접은 종이 안에 내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린 것이, 그리워하는 줄도 모르고 그
리워한 것들이 있다. 아이가 그것을 그만두면 나는 아이가 죽은 것처럼 울지도 모른다. 아이가 완
전히 종이접기에 질릴 때까지,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다. 죽어 없어진 것들을, 정말 있다면 대부분
의 인간이 졸도해버릴 만큼 무서운 것들을 접는 일을.
 요즘은 쉽게 잠에 들지 못해 아침까지 죽어라 버티다가, 낮에 쪽잠을 잔다. 그럴 때면 항상 같
은 꿈을 꾼다. 언젠가 친한 언니가 말해준 일과 유사한 꿈이다. 도저히 아이들을 키워낼 자신이
없어 죽으려고 떠났다던 드라이브. 그녀는 기어코 행하려 했던 바를 해내지 못했다. 대신 뒷자리
에서 잠든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고 했다. 드라이브 대신, 꿈 안의 나는 아이를 업고
광활한 모래사장을 내달린다. 거칠고 뜨거운 모래가 발을 할퀼 즈음, 속옷 안까지 파고든 모래 때
문에 온몸이 미친듯이 가려울 즈음. 등에 업은 아이를 모래 사장 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아이는
눈을 뜨고 있다. 눈꺼풀 위에 수북이 쌓인 모래 때문에 시뻘개진 내 눈을 마주 보고 있다. 바라만
본다. 무슨 말이라도 할 것처럼, 더듬더듬 입을 움직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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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계를 찬 후에야, J는 포크너를 이해하게 되었다. 포크너는 이렇게 썼다. 시간과의 전쟁터는 인간의 우매와 절망을 드러낼 뿐,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그리고 J는 이렇게 덧붙였다. 시간은 덩이로 만들어 쓰고, 후에는 버리면 된다. 괜찮은 시계를 사는 일의 미덕은 그뿐이었다.

퀜틴은 아버지로부터 또 그 할아버지로부터 시계를 받았으나, J는 아버지에게 시계를 주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선물한 오리스 문페이즈의 달은 58일을 주기로 한 바퀴 회전한다. 손목 위에서 꽉 찬 보름달부터 저무는 그믐달을 보는 일이 좋았던 것은, 그로 인해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0, 58. 365. 인간이 만들어 낸 숫자와 그림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낸다. 한동안 의식되지 않다가도 째깍, 하는 한 번의 초침 소리에 그간 들리지 않던 시간의 점점 희미해지는 긴 행렬이 마음속에 끊임없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하지만 크고 화려한 시계가 으레 그렇듯 무거운 메탈은 지겨워진다. J는 날짜도 암스트롱의 발자국도 없는, 얇고 작은 인기 없는 오메가 드빌로 시계를 바꿨다. 5년 쯤 찬 시계의 가죽밴드는 스위스에서 갈았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했다. J는 문페이즈가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에 차던 시계는 아버지 것이 되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조지 클루니는 닐 암스트롱처럼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우주 공간을 누빈다. 달 착륙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영하 50도와 영상 100도를 넘나들며, 달의 중력을 어떻게 이겨낼지 고민하는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스피드마스터. 더럽게 큰 우주 안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법은 차라리 시간 안에 묶이는 것이다. J는 조용한 영화를 보다 여러 번 웃었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 신경 쓰였다. 약속시간을 어기는 것부터, 과음 후에 확인한 오후 두 시 같은 것들은 J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온전히 J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주말은 하나의 덩이 같은 것이었다. 한 덩이는 가족에게, 한 덩이는 친구들에게, 또 다른 한 덩이는 J 자신을 위해. 덩이가 끝나갈 즈음에는 어김없이 최악이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큰 덩어리의 시간을 확보하고, 벽면에 할 일들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끝나면 떼서 버렸다. 그의 시간은 그런 종류였다. 떼서 버리면 그대로 끝난다. 시계나 시간처럼 떼서 버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건 누이 같은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와 포크너에게 없었던 누이가 퀜틴과 J에게는 있었다. J의 누이는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며,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J는 지나가다 마주친 모든 것들에서 엄마를 생각했지만 누이는 엄마에게 요일과 시간을 정해 전화했다.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동류 같은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느꼈다. 아버지와는 같이 자거나 옆에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했다. 예전에 워낙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었기에 그에 대한 추억도 없고, 없어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J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정도는 그의 엄마가 속상해할 만큼 강했다. 아버지에게 J 자신이 보석 같은 아들임을 알았어도. 또는 알았기에.

아버지는 결혼한 후에 고생이 많았지만, J를 위하면서 동시에 J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J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4년 전부터는 그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한 직장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하는 것의 어려움, 수면장애 때문에 타먹었다는 약들, 스스로 왕따라는 아버지의 말 같은 것 때문에 퇴직선물로 노트북을 사드렸다. 아버지는 울었다. 아버지는 J가 사진이라도 보내면 엄마에게 이 사진 너도 봤느냐 묻고, 그녀가 안 봤다고 말하면 엄청 좋아했다. 애처럼.

스물아홉의 J 29를 새긴 반지를 갖고 서른을 헤아렸다. 너무 싫었지만 그렇게 했다. 무언가를 맞이하는 건 말기 암 환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일 같았다. 그 때문에 만나던 스물 한 살의 친구와 뻔해도 의미 있는 것-예를 들면 펜션을 잡고 케익을 산다거나-을 하진 않았다.

여기저기 클럽을 돌아다니다 결국 아무데서나 카운트다운을 했다. 녹색 조명, 구린 바, 정신없이 취한 여자애들, 열 살 차이나는 애,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사람들. J의 서른은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 올림픽 대로에서 슬픔의 꼭짓점 같은 걸 만난 기분이었다. J는 산 정상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람처럼 챙겨 입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귀찮게 자꾸 말을 걸었다. 시간 밖에서 생을 살았다는 기사는 서른이 별거냐, 서른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인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알았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나온 퀴즈에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방송국에서 정답을 말했다고 전화연결을 부탁했다. 그때가 말의 해여서, 말 닮은 인물 셋을 대시오. 유희열, 이문세, 하나는 말하자마자 잊어버렸다. 백화점 상품권 30만원을 받았을 때, J 29J13이라는 각인을 만지면서 촌스러운 감상에 젖었다.

서른셋의 J는 더 이상 어디에 주름이 늘었는지 확인하며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진급했고 스피치를 유화를 와인을 배우면서 마흔을 생각했다. 시간을 세고 있는 J는 항상 시간 안에 살고 스물에 서른을 생각하고 서른에 마흔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형제들이 말한 그리고 어머니가 말하지 않은 보편적인 늙음이란 그저 용기 없이 시간을 헤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J는 서른을 헤아리던 스물아홉에 함께 있었던 사람을 아직도 생각해본다. 별 거 아닌 일을 계속해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비싼 와인을 마시고, 여행을 갈 수도 있었던 날을.

몇 시에 자든 일어나는 시간은 항상 같았다. 일곱시 삼십분, 사십오분, 오십오분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항상 55분에 일어나 뉴스를 켰다. 날씨 나올 때쯤 머리를 말리면 딱 맞았다. 어린이 프로에서 엄마 까투리 노래가 들릴 때 신발을 신지 않았으면 지각이다. 회사에는 8 55분에 맞춰 도착한다. J의 전쟁터는 트루먼쇼 같은 것이다. 퇴근 후에 혼자 일하고, 아침에 눈뜨면 어느새 양치질하는 자신의 싸움은 성립조차 안 된다.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그러므로 좀 전에 출근했지만 또 하는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The Sound and The Fury(소리와 분노)발췌 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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表裏不可同

 

 

()이 숙()을 다시 만난 것은 두 달 여 전, 실로 아주 오랜만이었다. 전남편과의 결혼을 위해 서울로 떴던 것도 벌써 10년이 다 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은 고향 친구라면 고향 친구였고, 동창이라면 동창이었으며, 삼십 년 지기라면 삼십 년 지기였다. 사람들이 들이미는 몇 가지 기준에 항상 둘의 관계가 걸려든다는 사실을, 은 얼마 전에 처음 깨달았다. 이 대뜸 어느 밤에 찾아와 꺼냈던 고백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말야……. 그것은 다행히도 오로지 30대라는 그들의 나이에 관해서였지만, 순간 은 아찔해졌다. 그녀는 차분히 머리를 넘겼다. 밤기운이 서늘해서일까, 머리가죽에도 소름이 돋은 것이 느껴졌다. 같은, 같은, 같은. 같은 여자…. 은 그 단어를 몇 번씩 되뇌었다. 촘촘하든 허술하든, 어떤 말이 그녀와 을 한 그물에 묶어둘 수 있다니. 어쩌다가 이 그물에 걸려들었을까. 이 그물은 대체 몇 겹인가, 찢을 수는 있는 종류인가.

은 버스 창을 한껏 열어젖히더니, 돌아오는 길 내내 졸았다. 은 자신의 어깨에 닿을 듯 말듯,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는 을 내려 보았다. 진한 터치에서 시작해 끝은 산만하게 흐트러진 눈썹이 있었고, 제 아버지를 꼭 닮은 통통한 코가 있었고, 시무룩하게 끝이 내려앉은 입술이 있었다.

그 입이 바로 그물을 짜내는 입이었다. 가끔 입이 벌어질 때 드러나는 희고 축축하고 얇은 실. 그것들이 모여서 그물이 되어, 을 성기게 혹은 끈끈하게 옭아맸다. 벌어진 입이 의 어깨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하던 때에, 순간 온몸에 열기가 차올랐다. 그녀는 늘어졌던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러자 은 흔들리는 차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내 타닥타닥……. 창에 의 머리가 부닥치는 박자가 이어졌다. 그 박자는 경쾌했고, 은 조금 마음이 쓰였다.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시내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 결혼할 사람의 사촌의 친한 이웃의남동생 되는 사람 가게에 갈 일이 있어서였다. 사촌인지 사촌의 이웃인지하는 사람이 시내에 가게를 차리는데, 새로 바를 벽지 색을 정하지 못해 고심이라고 했다. <그래도 서울에서 좀 지낸 네가 그런 일에 능>하니 <함께> 고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 은 오돌토돌하고 구질구질한 색의 벽지, 너무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해 촌티 나는 벽지,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조각만한 벽지들을 어루만졌다. 오늘은 이 고른 바로 그 벽지가 꼼꼼하게 잘 발리는지 확인하러 갔다. 꼼꼼하게 색이 잘 나왔는지, 벽지가 고르게 잘 발리는지. 그런 것들은 왜, 여자들 눈에만 보이잖아, 그이 주변에는 온통 남자들뿐이라. 어머, 내가 금방 <그이>라고 했니, 어쩜 좋아. 나도 참.

은 대뜸 진심을 고백하곤 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고 숨길 감정을 가려내지 않고서. <우리 같은 여자>라고 말을 꺼냈던 그 밤 말이다. 그날도 은 심란한 표정으로 대뜸 사과를 했다. 용서를 구하니 해주었는데, 후련한 표정에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워 보이던지. 찝찝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어찌됐든 네가 돌아오니, 나는 참 좋다.> 어찌됐든, 돌아오니, 어찌, 됐든, 돌아, 왔다…라, 흐음, 갑자기 눈을 뜬 을 응시했다. 그 사람들 마음에 들었겠지? <우리> 가 고른 거니까, 혹 별루라고 하면은……. 은 애교스럽게 웃었다. 통통한 코가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휘었고, 이내 입술선을 매만졌다. 약간의 환멸이 차올랐다. 그것은 자신의 습관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서울 친구들이 곱다고 말해준 것이었는데. 습관도 습관인데, 어색하게 옮겨 붙은 서울말도 듣기 거북했다. 평생 동네 밖으로 발도 뻗은 적 없으면서.

암튼……. 내가 이런 얘기를 너 아니면 누구한테 하니. 너는 내 마음을 알겠지?

얘는, 뭔 쓸데없는 감상을 늘어놓고 있어.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늘어놓는 사람도 없다, 정말 신혼여행 첫날밤에 입을 빤쓰 색깔도 골라달라고 할 년이다, 이년은. 그런 생각을 맘속으로 하다, 은 불길함에 고개를 휘둘렀다. 저번에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사촌의 이웃의 벽지도 골라달라고 할 년, 은 정말로 그것을 물었다. 차라리 중놈들이 빤쓰만 입고 방문을 휙휙 열어젖힐 때가 그래도 나았던가. 은 입술선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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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의 퇴근은 아홉시쯤이다. 저녁 반 수업이 끝나면 아이스링크에 십분 남짓 제빙기가 돈다. 그 후에 이상상태가 있는지 짧게 점검하는 것이 마지막 업무다. 오늘은 링크 밖에서 잡무가 많아 조금 늦어졌다. 열시 십분, 일공일공. 그 숫자를 본 픽시는 짧게 기도를 올렸다. 내일 출근 안 하게 해주세요. 태풍이 오든 홍수가 나든 뭔 일이라도 나서.

중학생 때까지 스케이트 선수생활을 했던 경력으로 얻은 알바자리였다. 편하게 다니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픽시는 어쩐지 그 점 때문에 괴로울 때가 더 많았다. 몇 시간을 내리 연습하고 잠깐 허리를 펴면, 이렇게 뺑뺑 돌아 세상 끝에 다다르기라도 할 양 이를 꽉 깨문 동료들이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허리를 굽힌 채 스케이트를 타는 일이 없지만, 여전히 열 살 어린 애들이 새파란 선수복을 입고 연습하는 장면을 봐야했다. 얼마 전에는 그때의 코치도 만났었다. 넌 여전히 효녀구나. 공부를 할 거면 공부만 해야지, 왜 알바를 하고 있니?

그 말을 듣고, 픽시는 빙상장에 딸린 샤워실에서 한 시간 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온몸 구석구석 스크럽을 했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자란 털도 뽑았고, 십오 분 동안 트리트먼트도 했다.  젖은 머리칼에서 뚝뚝 흐르는 물방울을 무시하고 쭈그려 앉아, 발바닥이나 팔꿈치의 각질을 살살 뜯어냈다. 아무렇게나 발린 패디큐어를 꾹꾹 닦아낸 다음 발톱을 깎았다. 그렇게 깎은 발톱은 빙상장에다 뿌려 버렸다. 선산에 조상 뼛가루를 흩날리듯, 소원을 적은 풍등을 날리듯.

그런 객기를 부렸던 것도 잠깐 뿐, 픽시는 열심히 출근하고 제 할일을 했다. 잡념이 들 때는 명상이 최고다. 몸의 감각을 완전히 떨쳐내거나, 또는 온전히 그에만 집중하는 것. 오늘은 퇴근 후에 두 명의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 하나는 홍대 다니는 남자, 다른 하나는 건축 사무소 다니는 남자인데, 한 번에는 아니고 한 명씩 만날 계획이었다. 링크로 한 발씩 떼면서, 누구부터 만날까, 어디서 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링크 저편에서, 어떤 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픽시는 고개를 두어 번 휘저었다. 그이는 점점 픽시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픽시는 눈을 빡빡 비비고 다시 쳐다 보았다. 그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데, 다가오다가…휙 지나쳐 고꾸라진 그 순간, 픽시는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같은 눈높이,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 픽시는 말문이 막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해?

널… 보고 있었어. 너는……뭐야?

픽시.

네가, , 픽시야?

 

픽시의 앞에 나타난 또다른 픽시는 다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픽시는 당황스러웠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기도 빨이 이렇게 빨리 통하기도 하나? 대신 출근해줄 내가 나타난 걸까? 하지만 이내 또다른 픽시의 스케이팅에 매료되었다. 직선주로에서 대담한 발 뻗기, 부드럽고 가뿐한 코너링, 적재적소에 작동하는 어깨와 허벅지 근육. 문득, 그 장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또다른 픽시는 한참이 지나서야 링크 밖으로 나왔다.

 

저기, 내가 픽시인데.

맞아, 너도 픽시지. 나도 픽시야.

어디가 아픈 걸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디서 왔어? 왜 왔어?

난 얼음에서 태어났는데.

우리가 똑같이 생겼어도 같은 이름일 수는 없어. 네게도 이름이 필요해. 지금부터 널 딕시라고 부를게.

딕시, 나쁘지 않네.

 

픽시는 딕시와 함께 링크장을 나서, 집을 향해 걸었다. 얘는 교통 카드는커녕 돈도 없을 테니까, 걸어가기로 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깰 겸 콧노래라도 부를까, 픽시가 흥얼거리려는 그 순간, 딕시가 선수를 쳤다. 픽시가 부르려던 바로 그 노랫가락이었다. 넌 참, 방금 태어났는데도 다 잘한다. 딕시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몇 발자국 가지 않아, 오늘 만나기로 한 홍대남, 건축남 둘에게서 연락이 왔다. 픽시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두 명의 남자 중 한 사람에게 딕시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너는 뭐 해보고 싶은 거 없어?

난 너라니까. 니 꿍꿍이 다 아는데.

네가 대신 나갈래?

난 방금 태어났다니까.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난 방금 퇴근했잖아.

성장통인가, 막 쑤시는데.

퇴근통인가, 나도 힘든데.

너 지금 나랑 붙어보자는 거니?

 

픽시는 화가 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즐거웠다. 나와 대화하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딕시와 자신이 보다 유쾌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 중의 누구에게 딕시를 보내야 할까? 나와 비슷한 홍대남에게 보낼 것인가, 내 상태를 잘 파악하는 건축남에게 보낼 것인가?

 

건축남.

?

건축남한테 내가 가겠다고.

?

걔 다른 사람 만나는 것 같댔지. 남자도 만날 걸.

? 너 남자야?

 

똑같이 생긴 픽시와 딕시…… 하지만 딕시는 남자였다.

딕시는 망설일 겨를도 없이 택시를 타고 건축남에게로 떠났다. 픽시는 어딘가 허망해졌다. 홍대남을 집으로 부르기는 했지만, 지금은 도무지 섹스 같은 걸 할 기분이 아니었다.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혹시 딕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한담? 오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홍대남은 집으로 왔다. 보고 싶단 말이야, 오늘 안 보면 또 언제 보냐고.

홍대남은 픽시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더니, 무언가 검색해 찾은 것을 픽시 앞에 내밀었다.

 

도플갱어를 본 사람의 말로는 무척 비참해서 대개는 죽음을 맞이한다.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은 안타깝게도 없는 것 같다. 어떤 경우는 자기 자신을 보았다는 충격 때문에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즉사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며칠에서 1년 이내에 서서히 몸이 망가지거나 혹은 정신적인 장애를 초래해서 결국은 죽음에 이른다. 자신의 정신이 파괴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네가 선수를 쳐야지. 아 또, 여자가 도플갱어를 봤다는 이야기는 없대. 왜지? 가설 일 번, 여자는 도플갱어를 인식하지 못한다. 본질적으로 같은 종이기 때문에. 가설 이번, 여성에 대해서는 도플갱어가 있든 말든 상관 없다. 어차피 여성은 같은 ‘기능’을 하므로.

픽시는 홍대남의 가설이 그럴듯하면서도, 기분이 상했다. 열심히 끓인 라면을 가져오는 홍대남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아졌다. , 집에 가. 라면 먹고 갈게. 지금 가라니까! 아니 라면만 먹고 간다니까!

홍대남은 제 분에 못이겨 라면을 엎어버리고, 집을 나갔다. 홀로 남은 픽시는 공연히 슬픔이 차올라,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울고 있었을까, 딕시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섰다. 울고 있는 픽시를 보며 잠깐 놀랐지만, 조용히 픽시의 곁에 앉았다.

 

별로였나봐.

.

그랬구나.

너는, 너는 어땠어?

좋던데.

 

좋던데, 좋던데… 픽시는 그런 말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좋았다니? 처음부터 좋을 수가 있나? 아니 그래,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놀라지 않았을까? 딕시는 픽시와 똑같이 생겼지만 남자인데. 아니면, 남자라서 괜찮은 걸까.

 

걔가 뭐라고 울어. 울 일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

그래도. 나라면 주저 앉아서 울지는 않을 텐데.

우리 앞으로 어떡해?

나도 몰라.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도 있는 거지.

 

픽시는 눈물을 닦고 홍대남과 보던 창을 다시 켰다. 홍대남이 읽지 않았던 문장을 발견했다.

<간혹 예외도 있다. 괴테는 21세 때 도플갱어를 보았지만 83세가 될 때까지 장수를 누렸으며, 그 유명한 대작인 『파우스트』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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