表裏不可同

 

 

()이 숙()을 다시 만난 것은 두 달 여 전, 실로 아주 오랜만이었다. 전남편과의 결혼을 위해 서울로 떴던 것도 벌써 10년이 다 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은 고향 친구라면 고향 친구였고, 동창이라면 동창이었으며, 삼십 년 지기라면 삼십 년 지기였다. 사람들이 들이미는 몇 가지 기준에 항상 둘의 관계가 걸려든다는 사실을, 은 얼마 전에 처음 깨달았다. 이 대뜸 어느 밤에 찾아와 꺼냈던 고백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말야……. 그것은 다행히도 오로지 30대라는 그들의 나이에 관해서였지만, 순간 은 아찔해졌다. 그녀는 차분히 머리를 넘겼다. 밤기운이 서늘해서일까, 머리가죽에도 소름이 돋은 것이 느껴졌다. 같은, 같은, 같은. 같은 여자…. 은 그 단어를 몇 번씩 되뇌었다. 촘촘하든 허술하든, 어떤 말이 그녀와 을 한 그물에 묶어둘 수 있다니. 어쩌다가 이 그물에 걸려들었을까. 이 그물은 대체 몇 겹인가, 찢을 수는 있는 종류인가.

은 버스 창을 한껏 열어젖히더니, 돌아오는 길 내내 졸았다. 은 자신의 어깨에 닿을 듯 말듯,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는 을 내려 보았다. 진한 터치에서 시작해 끝은 산만하게 흐트러진 눈썹이 있었고, 제 아버지를 꼭 닮은 통통한 코가 있었고, 시무룩하게 끝이 내려앉은 입술이 있었다.

그 입이 바로 그물을 짜내는 입이었다. 가끔 입이 벌어질 때 드러나는 희고 축축하고 얇은 실. 그것들이 모여서 그물이 되어, 을 성기게 혹은 끈끈하게 옭아맸다. 벌어진 입이 의 어깨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하던 때에, 순간 온몸에 열기가 차올랐다. 그녀는 늘어졌던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러자 은 흔들리는 차창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내 타닥타닥……. 창에 의 머리가 부닥치는 박자가 이어졌다. 그 박자는 경쾌했고, 은 조금 마음이 쓰였다.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시내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 결혼할 사람의 사촌의 친한 이웃의남동생 되는 사람 가게에 갈 일이 있어서였다. 사촌인지 사촌의 이웃인지하는 사람이 시내에 가게를 차리는데, 새로 바를 벽지 색을 정하지 못해 고심이라고 했다. <그래도 서울에서 좀 지낸 네가 그런 일에 능>하니 <함께> 고민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말을 듣고, 은 오돌토돌하고 구질구질한 색의 벽지, 너무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해 촌티 나는 벽지, 쿰쿰한 냄새를 풍기는 조각만한 벽지들을 어루만졌다. 오늘은 이 고른 바로 그 벽지가 꼼꼼하게 잘 발리는지 확인하러 갔다. 꼼꼼하게 색이 잘 나왔는지, 벽지가 고르게 잘 발리는지. 그런 것들은 왜, 여자들 눈에만 보이잖아, 그이 주변에는 온통 남자들뿐이라. 어머, 내가 금방 <그이>라고 했니, 어쩜 좋아. 나도 참.

은 대뜸 진심을 고백하곤 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고 숨길 감정을 가려내지 않고서. <우리 같은 여자>라고 말을 꺼냈던 그 밤 말이다. 그날도 은 심란한 표정으로 대뜸 사과를 했다. 용서를 구하니 해주었는데, 후련한 표정에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워 보이던지. 찝찝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어찌됐든 네가 돌아오니, 나는 참 좋다.> 어찌됐든, 돌아오니, 어찌, 됐든, 돌아, 왔다…라, 흐음, 갑자기 눈을 뜬 을 응시했다. 그 사람들 마음에 들었겠지? <우리> 가 고른 거니까, 혹 별루라고 하면은……. 은 애교스럽게 웃었다. 통통한 코가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휘었고, 이내 입술선을 매만졌다. 약간의 환멸이 차올랐다. 그것은 자신의 습관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서울 친구들이 곱다고 말해준 것이었는데. 습관도 습관인데, 어색하게 옮겨 붙은 서울말도 듣기 거북했다. 평생 동네 밖으로 발도 뻗은 적 없으면서.

암튼……. 내가 이런 얘기를 너 아니면 누구한테 하니. 너는 내 마음을 알겠지?

얘는, 뭔 쓸데없는 감상을 늘어놓고 있어.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늘어놓는 사람도 없다, 정말 신혼여행 첫날밤에 입을 빤쓰 색깔도 골라달라고 할 년이다, 이년은. 그런 생각을 맘속으로 하다, 은 불길함에 고개를 휘둘렀다. 저번에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는가. 사촌의 이웃의 벽지도 골라달라고 할 년, 은 정말로 그것을 물었다. 차라리 중놈들이 빤쓰만 입고 방문을 휙휙 열어젖힐 때가 그래도 나았던가. 은 입술선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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