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계를 찬 후에야, J는 포크너를 이해하게 되었다. 포크너는 이렇게 썼다. 시간과의 전쟁터는 인간의 우매와 절망을 드러낼 뿐,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그리고 J는 이렇게 덧붙였다. 시간은 덩이로 만들어 쓰고, 후에는 버리면 된다. 괜찮은 시계를 사는 일의 미덕은 그뿐이었다.

퀜틴은 아버지로부터 또 그 할아버지로부터 시계를 받았으나, J는 아버지에게 시계를 주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선물한 오리스 문페이즈의 달은 58일을 주기로 한 바퀴 회전한다. 손목 위에서 꽉 찬 보름달부터 저무는 그믐달을 보는 일이 좋았던 것은, 그로 인해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30, 58. 365. 인간이 만들어 낸 숫자와 그림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낸다. 한동안 의식되지 않다가도 째깍, 하는 한 번의 초침 소리에 그간 들리지 않던 시간의 점점 희미해지는 긴 행렬이 마음속에 끊임없이 꼬리를 물기도 한다. 하지만 크고 화려한 시계가 으레 그렇듯 무거운 메탈은 지겨워진다. J는 날짜도 암스트롱의 발자국도 없는, 얇고 작은 인기 없는 오메가 드빌로 시계를 바꿨다. 5년 쯤 찬 시계의 가죽밴드는 스위스에서 갈았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했다. J는 문페이즈가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에 차던 시계는 아버지 것이 되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조지 클루니는 닐 암스트롱처럼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우주 공간을 누빈다. 달 착륙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영하 50도와 영상 100도를 넘나들며, 달의 중력을 어떻게 이겨낼지 고민하는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스피드마스터. 더럽게 큰 우주 안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법은 차라리 시간 안에 묶이는 것이다. J는 조용한 영화를 보다 여러 번 웃었다.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보다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 신경 쓰였다. 약속시간을 어기는 것부터, 과음 후에 확인한 오후 두 시 같은 것들은 J를 죽고 싶게 만들었다. 온전히 J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주말은 하나의 덩이 같은 것이었다. 한 덩이는 가족에게, 한 덩이는 친구들에게, 또 다른 한 덩이는 J 자신을 위해. 덩이가 끝나갈 즈음에는 어김없이 최악이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큰 덩어리의 시간을 확보하고, 벽면에 할 일들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끝나면 떼서 버렸다. 그의 시간은 그런 종류였다. 떼서 버리면 그대로 끝난다. 시계나 시간처럼 떼서 버릴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건 누이 같은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와 포크너에게 없었던 누이가 퀜틴과 J에게는 있었다. J의 누이는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며, 엄마를 사랑하고 아끼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J는 지나가다 마주친 모든 것들에서 엄마를 생각했지만 누이는 엄마에게 요일과 시간을 정해 전화했다.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동류 같은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느꼈다. 아버지와는 같이 자거나 옆에 앉아있는 것도 불가능했다. 예전에 워낙 보수적이고 권위적이었기에 그에 대한 추억도 없고, 없어도 아무렴 상관없었다. J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정도는 그의 엄마가 속상해할 만큼 강했다. 아버지에게 J 자신이 보석 같은 아들임을 알았어도. 또는 알았기에.

아버지는 결혼한 후에 고생이 많았지만, J를 위하면서 동시에 J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J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4년 전부터는 그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다. 한 직장에서 삼십 년 넘게 일하는 것의 어려움, 수면장애 때문에 타먹었다는 약들, 스스로 왕따라는 아버지의 말 같은 것 때문에 퇴직선물로 노트북을 사드렸다. 아버지는 울었다. 아버지는 J가 사진이라도 보내면 엄마에게 이 사진 너도 봤느냐 묻고, 그녀가 안 봤다고 말하면 엄청 좋아했다. 애처럼.

스물아홉의 J 29를 새긴 반지를 갖고 서른을 헤아렸다. 너무 싫었지만 그렇게 했다. 무언가를 맞이하는 건 말기 암 환자들에게나 어울리는 일 같았다. 그 때문에 만나던 스물 한 살의 친구와 뻔해도 의미 있는 것-예를 들면 펜션을 잡고 케익을 산다거나-을 하진 않았다.

여기저기 클럽을 돌아다니다 결국 아무데서나 카운트다운을 했다. 녹색 조명, 구린 바, 정신없이 취한 여자애들, 열 살 차이나는 애, 더 이상 나아질 것이 없는 사람들. J의 서른은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 올림픽 대로에서 슬픔의 꼭짓점 같은 걸 만난 기분이었다. J는 산 정상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는 사람처럼 챙겨 입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귀찮게 자꾸 말을 걸었다. 시간 밖에서 생을 살았다는 기사는 서른이 별거냐, 서른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인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알았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나온 퀴즈에 문자로 답을 보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방송국에서 정답을 말했다고 전화연결을 부탁했다. 그때가 말의 해여서, 말 닮은 인물 셋을 대시오. 유희열, 이문세, 하나는 말하자마자 잊어버렸다. 백화점 상품권 30만원을 받았을 때, J 29J13이라는 각인을 만지면서 촌스러운 감상에 젖었다.

서른셋의 J는 더 이상 어디에 주름이 늘었는지 확인하며 자존심 상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진급했고 스피치를 유화를 와인을 배우면서 마흔을 생각했다. 시간을 세고 있는 J는 항상 시간 안에 살고 스물에 서른을 생각하고 서른에 마흔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형제들이 말한 그리고 어머니가 말하지 않은 보편적인 늙음이란 그저 용기 없이 시간을 헤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J는 서른을 헤아리던 스물아홉에 함께 있었던 사람을 아직도 생각해본다. 별 거 아닌 일을 계속해서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서 비싼 와인을 마시고, 여행을 갈 수도 있었던 날을.

몇 시에 자든 일어나는 시간은 항상 같았다. 일곱시 삼십분, 사십오분, 오십오분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항상 55분에 일어나 뉴스를 켰다. 날씨 나올 때쯤 머리를 말리면 딱 맞았다. 어린이 프로에서 엄마 까투리 노래가 들릴 때 신발을 신지 않았으면 지각이다. 회사에는 8 55분에 맞춰 도착한다. J의 전쟁터는 트루먼쇼 같은 것이다. 퇴근 후에 혼자 일하고, 아침에 눈뜨면 어느새 양치질하는 자신의 싸움은 성립조차 안 된다.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그러므로 좀 전에 출근했지만 또 하는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의 The Sound and The Fury(소리와 분노)발췌 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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