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원의 특별한 여름, 산공부

 
 
 
글 신소원

 

 

여름방학, 새 숨을 들이켤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개월 남짓의 여름방학. 방학(放學), 말 그대로 학업을 잠깐 쉬어가는 시기다. 학생 대부분에겐 한 학기 동안 끝도 없이 밀려들었던 과제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 차올랐던 숨을 고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오로지 학업에서 ‘벗어남’에만 집중하며 이 시간을 보낼 학생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음 학기를 앞두고 새로운 숨을 들이켜볼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이 후덥지근한 계절에, 자꾸 무슨 새로운 숨을 들이켜라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기 중엔 미뤄왔던 개인 프로젝트를 다시금 차분한 눈으로 들여다볼 여유를 가지기에도, 졸업을 목전에 둔 경우라면 어떻게 이 학업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혹은, 어떻게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업을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않은가.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서 저마다의 숨을 고르는 이 시기. 어떤 이는 이때를 기회로 삼아 학교가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의 공부를 꾀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잠시 떠나 있는 이 시간. 다른 예종인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던 찰나 특별한 공부를 찾아 떠났다는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산공부: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특별한 여름나기

으레 ‘산공부’라고 한다. 소리, 전통 악기, 무용을 하는 전통예술가들이 한 템포 쉬어가는 계절을 맞아 산이나 바다 등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소리꾼들에게 이 산공부는 제대로 하면 ‘평생 먹을 농사를 짓는다’고 할 만큼의 중요한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난 명창들에겐 여름이면 저마다 찾는 폭포, 계곡(

전국의 소리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지리산 뱀사골, 동편제 발원지로 명창들이 득음했다는 구룡계곡 소리길, 이외에도 무주의 칠연계곡, 순창의 비룡폭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 산공부 장소들.)들도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소위 득음을 위해 깊은 산속에 홀로 갇혀 있던 고행 식의 산공부 형태는 없어진 지 오래라고 한다. 대신에 지역별로 명창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리전수관, 외딴 민박집, 한적한 사찰 등에서 스승을 모시고 20~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합숙하며 공부를 이어 나가는 캠프 형식의 수련이 일반적이다.

전통예술원 학생들이 매년 참여하고 있는 강릉 단오굿 연수 역시 마찬가지, 그와 유사한 형식이다.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강릉은 대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휴가철을 맞아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일 텐데 여기가 소위 깊은 자연의 범주로서 ‘산공부’를 하기 적절한 곳인가 일차적인 궁금증이 피어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예상보다 훨씬 큰 건물이기도 했다)에 도착했을 때 산공부라 해서 진짜 산으로, 들로, 바다로(…)를 상상했던 필자의 기대감은 여기가 정말 산공부를 하는 곳인가에 대한 의아함으로 향할 뻔도 했다. 하지만 건물에 점점 가까워지며, 밖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악기 소리에 조금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그림이 펼쳐지겠다는 새로운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속 혹은 무속악을 공부한다는 것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는 풍물, 무속, 탈춤, 전문예인집단까지 총 4개 분야로 세부 전공이 나누어진다. 졸업을 위해서는 4개 분야를 모두 습득해야 하지만 무속을 세부 전공으로 택하는 학생들의 수는 적은 편이다. 그 때문에 이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것을 배워가는지, 정확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교육과 전승, 공부의 영역인지 궁금했다.

이렇게 그들의 공부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한몫했다. 필자에게 올해는 단언컨대 무속 관련 콘텐츠에 푹 빠져 지내는 시간이었다. 올해 초 흥행했던 영화 〈파묘〉에서 시작해 실제 무속인의 의식 과정을 따라가는 티빙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샤먼 : 귀신전〉, 무속인들의 연애를 다룬 SBS의 〈신들린 연애〉까지. 특히 〈샤먼 : 귀신전〉의 경우 귀신 현상에 시달리는 사례자의 에피소드부터 무당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치유의 관점으로 풀어낸 한국 무속의 의미 등 한국 샤머니즘의 과정을 심도 있게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이전에 한국의 무속을 일종의 콘텐츠 혹은 그들만의 영역이라 얄팍하게 이해하고 있던 필자에게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이,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이로서의 무속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단오굿 연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응당 들었던 마음 역시, 무속에 관한 공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하고 그 내밀한 계승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더군다나 연수 프로그램의 이름 역시 단오굿, ‘굿’ 아닌가.

강릉 단오굿 무속악 교육 연수는 매년 여름 4박 5일간 자발적으로 참여한 20명 가량의 인원으로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에서 진행된다. 이 참여 인원 중 보통 절반이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들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김운석 강사는 강릉 토박이 출신이며,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 예술사, 전문사를 졸업한 후 2017년부터 무속악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단오제 보존 활동에 참여해 왔으며, 전통예술원 학생들은 물론 무속 연희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을 위해 강릉단오제 전승 교육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운석 강사에 따르면, 악사 또한 무당의 일종이다. 무녀가 노래와 춤으로 신들을 즐겁게 하고 사람과 신을 연결해 주는 존재라면, 악사는 그의 노래와 춤을 가능케 하는 연주를 하며 사람과 신 모두를 즐겁게 하는 역할이다. 주어진 박이 있기는 하나 정형화되지 않은 무속악의 특성상 100번을 연주하면 100번 다 다르게 연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김운석 강사는 이를 재즈에 비유했다). 이러한 무속악의 특성상 실제로 어떻게 전승하고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4박 5일간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하지만 한껏 차오른 기대감으로 교육 일정표를 받아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당혹감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한 장단을 익히는 것이 교육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중과 몰두, 반복. 귀가 트일 때까지

이 당혹스러운 교육 내용의 내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올여름 이들의 산공부는 동해안 지역의 ‘단오굿’에서 쓰이는 장단 중 춤을 반주하는 ‘거무장단’만을 집중적으로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무속악 교육 주간이 끝난 후엔 실제 무녀가 진행하는 교육도 있다고 한다. 무속은 흔히 ‘강신(降神)’의 영역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를 실제로 진행할 때는 노래, 춤 등 음악과 연희의 영역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강릉 단오굿은 세습무(신내림의 경험 없이 어려서부터 부모, 형제, 친척으로부터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굿을 하는 직업적 무속사제)가 주재하는 무속 의례이기에, 이 전통의 과정을 따르는 데엔 당연히 필요한 장단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무속악은 일반적인 풍물과 비교해 정형화되지 않은 가락,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변화무쌍한 가락이 특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열 명이 함께 연주하더라도 열 명 모두 자기 호흡에 따라 다른 가락을 연주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 탓에 무속악은 연희과 학생들이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분야이기도 하다. 연희과 학생들은 2학년 때 동해안 지역의 무속 관련 장단을 배우게 되는데, 이번 연수에 참여한 원현식(전통예술원 연희과 3학년) 학생에 따르면 이 과정이 꽤 어려워 매번 동포자(동해안 무속을 포기한 사람들)가 속출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다음 학기 동해안 무속을 순탄히 이어가기 위해 집중 공부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귀가 트이는’ 순간까지, 왜 이렇게 치고 소리를 내야 하는지에만 온종일 집중하고, 연주한다. 평상시 학기 중엔 수업과 개인 일정 탓에 예술 활동에 집중하기 어렵기에, 방학에 단 며칠 만이라도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한 영역의 공부에만 몰두하는 전통연희의 ‘산공부’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실제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경우 3분의 2 이상은 방학마다 합숙하며 저마다의 산공부 과정에 몰입한다고 한다.)

교육하는 거무장단은 단오굿이 끝난 후 무녀가 신들을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의 의미를 담은 춤을 출 때 사용되는 장단인데, 이 장단이 춤의 반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어떠한 선율의 느낌으로 장단을 구현해 낼 것인가 또한 중요한 문제다. 교육을 진행하는 김운석 강사는 물론, 학생들 모두가 ‘니노나노-’로 시작되는 선율을 함께 부른 후 연주를 시작하는 것 또한 선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불 수 있다. 취재 당시 두어 시간 함께 참여한 교육에선, 같은 선율과 장단이 귀가 먹먹해질 만큼 수없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5일을 함께 연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귀가 트이고, 자기의 호흡으로 연주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무속은 주로 ‘강신(降神)’의 영역이기에, 무속악과 이를 전수하고 교육하는 것 또한 어느날 신의 부름에 따라 신과 통하게 되는 심오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했던 필자의 얄팍한 관심이 또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 학기 농사, 혹은 나의 예술 전반을 책임질 산공부

이렇게 여름 캠프가 끝나고 나면, 당연히 이 여름의 산공부는 다음 학기 동해안 무속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수백 회, 수천 회를 반복해 연주했던 장단에 정말로 귀가 트여서일까? 마지막 날에는 참여한 모두가 돌아가며 한 명씩 연주하고 연수를 마치게 된다. 참여한 학생들에 따르면, 이 캠프에 참여하고 나면 다음 학기에 ‘동포자’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매해 여름 단오굿 연수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다음 해 음력 5월 3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는 실제 단오굿 행사에 상당수 참여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배웠던 장단들이 실제 굿판에서 무녀의 춤에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운석 강사는 스스로 전승 교육사로서, 강릉단오제와 무속악을 알리고 싶어 직접 보존회에 요청해 전수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도 이 산공부가 몹시 뜻깊은 일이라고도 한다. 그는 다소 진입장벽이 높다는 무속악 분야지만 여름 산공부로 우수한 연희성과 음악성을 공부하고 자신의 전공이해도까지 넓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올해 여름, 단오굿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웠던 전통예술원의 구성원들. 이들의 여름은 다음 학기를 넘어 각자의 예술 전반의 밑거름이 될 ‘산공부’의 적기였다. 

 

 

글 신소원
연극에 빠져 극작과에 들어왔는데, 방송일을 시작해 7년째 학교에 다니며 주변으로부터 ‘의대 다니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이에 지지 않으려, 하던 대로 잡다한 것에 관심을 두는 중.

 

 

https://art.karts.ac.kr/magazine/51/class-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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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아빠는 니콘의 D90을 열심히 썼다. 나는 카메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것을 탐내며 만지작거렸다. 열일곱의 내게 D90은 충분히 컸고(매우 중요), 렌즈를 돌려서 줌을 당기는(더 중요), 그래서 뭔가 멋진 그런 카메라였다. 만질 줄도 몰랐지만, 아빠를 엄청 졸라 그 카메라를 빌렸다.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수학여행을 미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유학반도 따로 없던 우리 학교에서, 대체 왜 한 학년 전체가 아이비리그를 투어하는 것이 수학여행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수학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사진기자는 따로 지원을 받아 선발되는 식이었다. 사진? 내가 뭐 아는 게 있나. 하지만 내게는 아빠의 D90이 있지 않던가. 나는 꼭 DSLR을 들고 찰칵거리고 싶었다. 애들 앞에서! 물론 그 DSLR 카메라가 하루종일 목에 걸고 다니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지 못해서 부린 객기였다. 웃긴 건 있는 건 장비뿐, 장비빨을 앞세운 내가 또 얼떨결에 사진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와 함께 사진기자가 된 애는 다른 반 남학생이었다. 걔 이름도 기억난다. 걔는 아마 내가 카메라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는 걸 단숨에 알아챘을 것이다. 왜냐? 10일여간 내내 오토로만 두고 찍었거든. 다른 걸 시도는 해봤지만 맘처럼 잘 안되길래 그냥 오토를 썼다. 취미든 업이든 카메라를 하는 사람이 들으면 기함할 일이다.

 

 아무튼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열일곱에게 10일은 너무 길었고, 결국 그것이 문제였다. 여행 후반부 즈음, 왔다리갔다리 줌을 돌리는 것도 심드렁해져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조차 귀찮아졌다. 아빠의 소중한 카메라, 당시 100만원이 넘었던 렌즈는 결국 깨먹었다. 아빠가 얼마나 카메라를 애지중지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걸 깨먹은 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잠깐 잠이 들면, 카메라를 깬 것이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인.. 그런 꿈을 꿨다. 하지만 일어났을 때 여전히 내 침대에 놓여있는 렌즈는 박살이 나 있었다. 아빠가 엄청 화를 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십년이 더 지나고난 지금에야,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카메라가 너무 소중해서, 딸이 렌즈를 깨먹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카메라를 빌려주지 않았을 것 아닌가. 실제로도 카메라를 깨먹은 사실을 들켰을 때, 아빠의 반응은 덤덤했다. 왜 숨기려 하느냐고, 그걸로만 혼이 났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비싼 카메라를 내 돈으로 사본 건 처음이다. 소중한 것들의 어떤 순간을 잘 남기고 싶다는 이유를 대면 믿어주려나? 나는 평소 물건을 다소 막 다루는 편이다. 남자친구는 그러다 고양이들이 결국 떨어뜨릴 거라고 몇 번째 경고하고 있다. 떨어뜨려도 뭐 어쩌겠나. 크게 상관 없다고 했다. 애초에 고양이들을 담으려고 산 카메라 아니던가. 십년 전 아빠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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