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odes는 빠리에서도 콘서트가 끝난 다음 오랜 시간 남아 관객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나는 그를 지나쳐갔다. 그와 해야 할 스몰톡에 자신이 없었고(무엇보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이미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맘때의 4호선에서 일어날 일이 두려웠기에.


 지난 타임라인을 훑어서 그 콘서트장의 이름을 찾았다. La Maroquinerie, 어려운 이름이다. 지금은 내가 그것을 제대로 발음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2016년 2월 5일의 나는 ‘모든 끔찍한 것을 잊게 만드는’그에 대해 적었다. 모든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던 때였고, 빨리 걷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종아리 앞에도 근육이 생겼었다. 하지만 2016년의 나는 그런 두려움 또는 바뀌지 않는 기질 같은 것 때문에 후회 없이 공연장을 나서는 사람은 못 되었다. 그렇게 나선 것은 어떤 확신이 있어서였다. 

 가장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데자뷔를 두고 시간의 배열에 오류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무려 세 개의 시간이 얽혀 아주 골때리는 드라마였다. 인간의 모든 일은 우주가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33주기마다 반복된다. 그 33주기에서, 어떤 배열에 오류가 나면 데자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데자뷔가 다른 세계에서 보내온 메시지라 들었다고, 답한다. 어떤 오류든 메시지든 간에, 데자뷔가 있다면 그와 반대되는 것도 있다. 데자뷔의 반대는 미시감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데자뷔의 반대는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다. 그 이상한 확신을 신봉하고부터 나는 어떤 일에 집착하거나 연연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Rhodes의 공연장을 미련 없이 나섰던 이유, 그건 데자뷔의 반대였다.

 빠리의 소극장에서 본 그를 비 오는 날 홍대 롤링홀에서 다시 보게 될 줄 알았을까. 그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참 이상하지,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끔찍한 것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 너무도 흔한 것 같은 말이 음악이 되어 사람을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이. 2년 전과는 달리, 오늘은 로즈와 빅 허그도 나누고 사인도 받았다. 다음번이 있다면, 그 언젠가에는 오늘을 잊고 데자뷔를 겪었으면 한다. 지나치게 끔찍하거나 두려운 것들이 옅어졌을 때 그냥,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To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607  (0) 2021.06.07
BEEP, What's your mcbeef?  (0) 2020.12.29
20180407 오후 네 시  (0) 2018.04.09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그리고 어떤 날의 깨달음  (0) 2017.10.31
면접 후에  (0) 2017.09.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