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술원의 특별한 여름, 산공부

 
 
 
글 신소원

 

 

여름방학, 새 숨을 들이켤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개월 남짓의 여름방학. 방학(放學), 말 그대로 학업을 잠깐 쉬어가는 시기다. 학생 대부분에겐 한 학기 동안 끝도 없이 밀려들었던 과제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 차올랐던 숨을 고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오로지 학업에서 ‘벗어남’에만 집중하며 이 시간을 보낼 학생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음 학기를 앞두고 새로운 숨을 들이켜볼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혹자는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이 후덥지근한 계절에, 자꾸 무슨 새로운 숨을 들이켜라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학기 중엔 미뤄왔던 개인 프로젝트를 다시금 차분한 눈으로 들여다볼 여유를 가지기에도, 졸업을 목전에 둔 경우라면 어떻게 이 학업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혹은, 어떻게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학업을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않은가.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서 저마다의 숨을 고르는 이 시기. 어떤 이는 이때를 기회로 삼아 학교가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의 공부를 꾀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잠시 떠나 있는 이 시간. 다른 예종인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던 찰나 특별한 공부를 찾아 떠났다는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산공부: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특별한 여름나기

으레 ‘산공부’라고 한다. 소리, 전통 악기, 무용을 하는 전통예술가들이 한 템포 쉬어가는 계절을 맞아 산이나 바다 등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소리꾼들에게 이 산공부는 제대로 하면 ‘평생 먹을 농사를 짓는다’고 할 만큼의 중요한 과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난 명창들에겐 여름이면 저마다 찾는 폭포, 계곡(

전국의 소리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지리산 뱀사골, 동편제 발원지로 명창들이 득음했다는 구룡계곡 소리길, 이외에도 무주의 칠연계곡, 순창의 비룡폭포 등등. 이름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 산공부 장소들.)들도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소위 득음을 위해 깊은 산속에 홀로 갇혀 있던 고행 식의 산공부 형태는 없어진 지 오래라고 한다. 대신에 지역별로 명창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리전수관, 외딴 민박집, 한적한 사찰 등에서 스승을 모시고 20~30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합숙하며 공부를 이어 나가는 캠프 형식의 수련이 일반적이다.

전통예술원 학생들이 매년 참여하고 있는 강릉 단오굿 연수 역시 마찬가지, 그와 유사한 형식이다.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강릉은 대도시만큼은 아니더라도 휴가철을 맞아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일 텐데 여기가 소위 깊은 자연의 범주로서 ‘산공부’를 하기 적절한 곳인가 일차적인 궁금증이 피어올랐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예상보다 훨씬 큰 건물이기도 했다)에 도착했을 때 산공부라 해서 진짜 산으로, 들로, 바다로(…)를 상상했던 필자의 기대감은 여기가 정말 산공부를 하는 곳인가에 대한 의아함으로 향할 뻔도 했다. 하지만 건물에 점점 가까워지며, 밖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악기 소리에 조금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그림이 펼쳐지겠다는 새로운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속 혹은 무속악을 공부한다는 것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는 풍물, 무속, 탈춤, 전문예인집단까지 총 4개 분야로 세부 전공이 나누어진다. 졸업을 위해서는 4개 분야를 모두 습득해야 하지만 무속을 세부 전공으로 택하는 학생들의 수는 적은 편이다. 그 때문에 이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것을 배워가는지, 정확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교육과 전승, 공부의 영역인지 궁금했다.

이렇게 그들의 공부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관심사도 한몫했다. 필자에게 올해는 단언컨대 무속 관련 콘텐츠에 푹 빠져 지내는 시간이었다. 올해 초 흥행했던 영화 〈파묘〉에서 시작해 실제 무속인의 의식 과정을 따라가는 티빙의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샤먼 : 귀신전〉, 무속인들의 연애를 다룬 SBS의 〈신들린 연애〉까지. 특히 〈샤먼 : 귀신전〉의 경우 귀신 현상에 시달리는 사례자의 에피소드부터 무당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치유의 관점으로 풀어낸 한국 무속의 의미 등 한국 샤머니즘의 과정을 심도 있게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이전에 한국의 무속을 일종의 콘텐츠 혹은 그들만의 영역이라 얄팍하게 이해하고 있던 필자에게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이,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이로서의 무속인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프로그램이었다. 단오굿 연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응당 들었던 마음 역시, 무속에 관한 공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파악하고 그 내밀한 계승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였다. 더군다나 연수 프로그램의 이름 역시 단오굿, ‘굿’ 아닌가.

강릉 단오굿 무속악 교육 연수는 매년 여름 4박 5일간 자발적으로 참여한 20명 가량의 인원으로 강릉단오제전수교육관에서 진행된다. 이 참여 인원 중 보통 절반이 한예종 전통예술원 학생들이다. 교육을 진행하는 김운석 강사는 강릉 토박이 출신이며,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 예술사, 전문사를 졸업한 후 2017년부터 무속악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단오제 보존 활동에 참여해 왔으며, 전통예술원 학생들은 물론 무속 연희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을 위해 강릉단오제 전승 교육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운석 강사에 따르면, 악사 또한 무당의 일종이다. 무녀가 노래와 춤으로 신들을 즐겁게 하고 사람과 신을 연결해 주는 존재라면, 악사는 그의 노래와 춤을 가능케 하는 연주를 하며 사람과 신 모두를 즐겁게 하는 역할이다. 주어진 박이 있기는 하나 정형화되지 않은 무속악의 특성상 100번을 연주하면 100번 다 다르게 연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김운석 강사는 이를 재즈에 비유했다). 이러한 무속악의 특성상 실제로 어떻게 전승하고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4박 5일간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하지만 한껏 차오른 기대감으로 교육 일정표를 받아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당혹감이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한 장단을 익히는 것이 교육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중과 몰두, 반복. 귀가 트일 때까지

이 당혹스러운 교육 내용의 내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올여름 이들의 산공부는 동해안 지역의 ‘단오굿’에서 쓰이는 장단 중 춤을 반주하는 ‘거무장단’만을 집중적으로 익히는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무속악 교육 주간이 끝난 후엔 실제 무녀가 진행하는 교육도 있다고 한다. 무속은 흔히 ‘강신(降神)’의 영역이라고 알려졌지만, 이를 실제로 진행할 때는 노래, 춤 등 음악과 연희의 영역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강릉 단오굿은 세습무(신내림의 경험 없이 어려서부터 부모, 형제, 친척으로부터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굿을 하는 직업적 무속사제)가 주재하는 무속 의례이기에, 이 전통의 과정을 따르는 데엔 당연히 필요한 장단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무속악은 일반적인 풍물과 비교해 정형화되지 않은 가락,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변화무쌍한 가락이 특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열 명이 함께 연주하더라도 열 명 모두 자기 호흡에 따라 다른 가락을 연주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 탓에 무속악은 연희과 학생들이 가장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분야이기도 하다. 연희과 학생들은 2학년 때 동해안 지역의 무속 관련 장단을 배우게 되는데, 이번 연수에 참여한 원현식(전통예술원 연희과 3학년) 학생에 따르면 이 과정이 꽤 어려워 매번 동포자(동해안 무속을 포기한 사람들)가 속출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이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다음 학기 동해안 무속을 순탄히 이어가기 위해 집중 공부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귀가 트이는’ 순간까지, 왜 이렇게 치고 소리를 내야 하는지에만 온종일 집중하고, 연주한다. 평상시 학기 중엔 수업과 개인 일정 탓에 예술 활동에 집중하기 어렵기에, 방학에 단 며칠 만이라도 다른 것은 모두 제쳐두고 한 영역의 공부에만 몰두하는 전통연희의 ‘산공부’를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실제 전통예술원 학생들의 경우 3분의 2 이상은 방학마다 합숙하며 저마다의 산공부 과정에 몰입한다고 한다.)

교육하는 거무장단은 단오굿이 끝난 후 무녀가 신들을 즐겁게 하는 ‘오신(娛神)’의 의미를 담은 춤을 출 때 사용되는 장단인데, 이 장단이 춤의 반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어떠한 선율의 느낌으로 장단을 구현해 낼 것인가 또한 중요한 문제다. 교육을 진행하는 김운석 강사는 물론, 학생들 모두가 ‘니노나노-’로 시작되는 선율을 함께 부른 후 연주를 시작하는 것 또한 선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불 수 있다. 취재 당시 두어 시간 함께 참여한 교육에선, 같은 선율과 장단이 귀가 먹먹해질 만큼 수없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모두가 5일을 함께 연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귀가 트이고, 자기의 호흡으로 연주하는 게 가능해진다고 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무속은 주로 ‘강신(降神)’의 영역이기에, 무속악과 이를 전수하고 교육하는 것 또한 어느날 신의 부름에 따라 신과 통하게 되는 심오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했던 필자의 얄팍한 관심이 또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 학기 농사, 혹은 나의 예술 전반을 책임질 산공부

이렇게 여름 캠프가 끝나고 나면, 당연히 이 여름의 산공부는 다음 학기 동해안 무속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함께 수백 회, 수천 회를 반복해 연주했던 장단에 정말로 귀가 트여서일까? 마지막 날에는 참여한 모두가 돌아가며 한 명씩 연주하고 연수를 마치게 된다. 참여한 학생들에 따르면, 이 캠프에 참여하고 나면 다음 학기에 ‘동포자’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매해 여름 단오굿 연수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다음 해 음력 5월 3일부터 8일까지 진행되는 실제 단오굿 행사에 상당수 참여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배웠던 장단들이 실제 굿판에서 무녀의 춤에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운석 강사는 스스로 전승 교육사로서, 강릉단오제와 무속악을 알리고 싶어 직접 보존회에 요청해 전수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도 이 산공부가 몹시 뜻깊은 일이라고도 한다. 그는 다소 진입장벽이 높다는 무속악 분야지만 여름 산공부로 우수한 연희성과 음악성을 공부하고 자신의 전공이해도까지 넓힐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올해 여름, 단오굿을 열심히 가르치고 배웠던 전통예술원의 구성원들. 이들의 여름은 다음 학기를 넘어 각자의 예술 전반의 밑거름이 될 ‘산공부’의 적기였다. 

 

 

글 신소원
연극에 빠져 극작과에 들어왔는데, 방송일을 시작해 7년째 학교에 다니며 주변으로부터 ‘의대 다니냐’는 핀잔을 듣고 있다. 이에 지지 않으려, 하던 대로 잡다한 것에 관심을 두는 중.

 

 

https://art.karts.ac.kr/magazine/51/class-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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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아빠는 니콘의 D90을 열심히 썼다. 나는 카메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것을 탐내며 만지작거렸다. 열일곱의 내게 D90은 충분히 컸고(매우 중요), 렌즈를 돌려서 줌을 당기는(더 중요), 그래서 뭔가 멋진 그런 카메라였다. 만질 줄도 몰랐지만, 아빠를 엄청 졸라 그 카메라를 빌렸다.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수학여행을 미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유학반도 따로 없던 우리 학교에서, 대체 왜 한 학년 전체가 아이비리그를 투어하는 것이 수학여행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 수학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사진기자는 따로 지원을 받아 선발되는 식이었다. 사진? 내가 뭐 아는 게 있나. 하지만 내게는 아빠의 D90이 있지 않던가. 나는 꼭 DSLR을 들고 찰칵거리고 싶었다. 애들 앞에서! 물론 그 DSLR 카메라가 하루종일 목에 걸고 다니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지 못해서 부린 객기였다. 웃긴 건 있는 건 장비뿐, 장비빨을 앞세운 내가 또 얼떨결에 사진기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와 함께 사진기자가 된 애는 다른 반 남학생이었다. 걔 이름도 기억난다. 걔는 아마 내가 카메라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는 걸 단숨에 알아챘을 것이다. 왜냐? 10일여간 내내 오토로만 두고 찍었거든. 다른 걸 시도는 해봤지만 맘처럼 잘 안되길래 그냥 오토를 썼다. 취미든 업이든 카메라를 하는 사람이 들으면 기함할 일이다.

 

 아무튼 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 열일곱에게 10일은 너무 길었고, 결국 그것이 문제였다. 여행 후반부 즈음, 왔다리갔다리 줌을 돌리는 것도 심드렁해져버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조차 귀찮아졌다. 아빠의 소중한 카메라, 당시 100만원이 넘었던 렌즈는 결국 깨먹었다. 아빠가 얼마나 카메라를 애지중지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걸 깨먹은 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잠깐 잠이 들면, 카메라를 깬 것이 사실 일어나지 않은 일인.. 그런 꿈을 꿨다. 하지만 일어났을 때 여전히 내 침대에 놓여있는 렌즈는 박살이 나 있었다. 아빠가 엄청 화를 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십년이 더 지나고난 지금에야,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카메라가 너무 소중해서, 딸이 렌즈를 깨먹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카메라를 빌려주지 않았을 것 아닌가. 실제로도 카메라를 깨먹은 사실을 들켰을 때, 아빠의 반응은 덤덤했다. 왜 숨기려 하느냐고, 그걸로만 혼이 났다.

 

 그때 이후로 이렇게 비싼 카메라를 내 돈으로 사본 건 처음이다. 소중한 것들의 어떤 순간을 잘 남기고 싶다는 이유를 대면 믿어주려나? 나는 평소 물건을 다소 막 다루는 편이다. 남자친구는 그러다 고양이들이 결국 떨어뜨릴 거라고 몇 번째 경고하고 있다. 떨어뜨려도 뭐 어쩌겠나. 크게 상관 없다고 했다. 애초에 고양이들을 담으려고 산 카메라 아니던가. 십년 전 아빠도 비슷한 마음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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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년째 <닥치는 대로 해결>의 삶을 살고 있다. 시간 관리하는 법을 아예 잊어버린 것처럼, 마감이든 뭐든 끝에 이른 것들을 쳐내기에 바쁘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도 만족시킬 수 없는 결과를 내게 된다. 개별적으로 생각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들을 한 데 모으는 나라는 사람에게 그 모든 실패가 쌓인다는 점은 부정 불가한 사실이다. 속에 ‘충분히 노력을 다하지 않았음’이 마구 쌓여가다보니 삶이 전반적으로 너무 불만족스럽다. 일괄 폐기처분, 리셋해버리고 싶은 병이 도진다. 밖에서 볼 때는 이것도 저것도 안 놓고 그런대로 잘 유지하고 있는 사람 같겠지만, 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나는 딱 그 정도로 유지될 정도로 살고 있다는 점, 모든 것이 어떻게 유지될 만큼만 마음을 쏳고 있다는 점. 그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 괴롭다.

전부 어영부영할 거면 아무것도 안 하고 속시원히 노는 게 나았을 거란 생각. 그런 생각의 고리는 발전 없이 되풀이된다. 속이 시끄럽다. 어딘가에 단단히 갇힌 것 같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이럴 거면 왜 @@해?’ 밖에 없다니. 처참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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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설명해도, 어떤 말을 덧붙여도 절대 이해받을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얼마나 외로운지에 대해 떠들 때면, 나의 다정한 친구는 그런 상황은 대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정리해주곤 했다. 하나는 다소 오만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바보여서 잘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성의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그 이야기는 꽤 위로가 되었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는 일. 다시 말해 누군가와 이해를 주고받는 일이 결국에는 나와 상대방, 우리 둘만의 문제인 것처럼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망상으로 키워왔던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과 슬픔이, 사실은 정신을 놓은 채 들이붓는 물을 먹고서 미친 듯이 자라난 잡초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길 힘을 주었다. 언제든 정신을 차리고, 과감히 뽑아내면 없어질 것들이라고 생각해보는 일도 가능했다.

 

 그러나 외로움이 극심한 날이면, 다정함도 부질없었다. 친구가 일러준 두 가지 상황도 쉽게 반론이 가능했다. 상대방이 바보여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끔 멀끔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그 전에, 내가 이야기를 건넨다고 해서, 듣는 사람은 항상 성의를 다해 귀 기울여 주어야 하는가?

 

 혹시, 이 이해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이 앞으로도 수 차례 닥쳐오고 반복되어 끝내 나를 삼켜버리면 어떡하나.

 

 그 두려움에 짓이겨진 상태로, 나는 조승희의 희곡을 읽었다. 그 희곡 안에는 이해할 역량도, 성의도 없는 상대방을 붙잡고, 어차피 상대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더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쏟아내는 인물들이 있었다.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 무대에 오르는 인물은 각자의 목표와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목표를 실현할 수 없게 하는 장애물을 앞에 두고 그를 이겨내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만들어낸 인물이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배웠고, 그렇기에 그런 인물을 만들어내는 훈련만 꽤 오래 했다.

 조승희의 희곡과 조승희의 희곡을 읽는 이 극의 인물들은 예의 ‘살아있는’ 인물에서 먼 거리에 있다. 이해받고 싶어서, 또는 너를 이해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쏟아내는 인물들. 그들은 아무런 목표도 동기도 없어 보이는 ‘살고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나의 지독한 어떤 날들의 모습을 닮았다.

 

 말하기조차 지겹고 지독하지만, 섣불리 누군가의 탓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나의 문제와 그 이유, 그것들에 갇혀서 허우적대는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허우적대다 맞는 뻔한 상태, 상상 가능한 최악의 결말. 그 사이에서 지겹게 오가는 것 외에,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으나 조금 더 나은 날도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신을 놓고서 잡초를 기르던 나의 곁에 있어주었던 친구에게도, 조금 더 나아진 날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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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트너› 의 장면

연습이 한창이던 어느 금요일, 한 시에 시작하는 연습에 앞서 열두 시쯤 세정(전문사 연기과 15)과 먼저 만나서 작품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 그와 나는 2018년 여름 ‘돌곶이 인큐베이터 워크숍’에서 작가와 배우로 만났다. 지난 여름에 이어 다시 인큐베이터 워크숍에 참여했다는 그가, 어떤 작품으로 이 겨울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전날 그가 보내온 ‹파트너›의 대본을 읽었다. 1월 25일, 연습 3주차 즈음이라는 그 날까지 정리된 것만도 50장에 가까운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야기, 이 6이라는 숫자는 ‹파트너›의 무대에 오르는 배우의 숫자 여섯 명과도 일치했다. 처음 만났지만, 어딘가 익숙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 대본에 쓰인 여섯 개의 배우 이름에는 아는 이도, 전혀 모르는 이도 있었다. 이름의 주인들이 어떻게 이 이야기를 그려낼지 헤아리는 동안, 나는 짧게 웃기도 하고 울컥하는 마음을 다스리려 목을 가다듬기도 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자연스레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파트너’라는 배역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여섯 개의 이야기들은 그들이 다루는 소재와 내용이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다가 파트너라는 배역이 등장함과 동시에 하나로 묶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때 쯤, 지난 여름 공연에서 파트너였던 세정이 카페로 들어왔다. 

돌곶이 인큐베이터 워크숍
여름과 겨울 방학마다 연극원 학생들이 통칭 ‘인큐’, ‘야합’이라고 부르는 공연이 올라간다. 두 프로그램 모두 연극원 학생들이 학과 수업에서 벗어나 직접 창작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공연을 준비한다. 소정의 제작비와 무대를 지원받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면 후속 지원을 받는 혜택이 있지만 대본부터 시작해 스탭 구인, 무대, 소품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 스스로 해내야 하기에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나의 경우에만도, 1학기 종강 후 한 달 반은 인큐 준비와 함께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여름이 지독하게 더웠는지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날만큼 바쁜 한 달이었다.

세정은 연극원 재학 중 총 세 번의 인큐 공연에 참여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인큐의 첫 번째 장점은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인큐 선정작은 대부분 순수 창작물이거나 기존의 작품을 재구성한 것이다. 초연의 일원으로서 작품 개발에 참여하며,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배운다. 그것은 오랜 기간 작업을 해온 세정에게도 늘 흥미로운 일이다. 공연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곧, 새로운 배움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서 나 역시 연극원에서 배운 바이기에 크게 공감했다. 

힘든 점이라면 응당 적은 제작비이지만, 인큐 자체가 작품 개발과 발굴에 성격을 두고 있으니 공연보다는 개발 전 단계라 여기면 그 또한 납득할 만하다. 그럼에도 60만원이라는 제작비에 맞추기 위해 공연을 빈 무대에서 올릴 수는 없으니, 무대나 소품에 있어서는 기술적인 지원이 주어지면 한결 나을 것이다. 이전 학기 공연의 소품들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목록화되어 있다면 혹은 제작사의 구 세트들을 지원받아 이를 바탕으로 준비하는 공연이라면 어떨까? 무언가를 구체화하고 키워낸다는 ‘incubate’, 기술과 아이디어를 실험해보는 장인 ‘workshop’의 이름을 따르는 데에는 조금 더 보완되어야 하는 지점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유지될 프로그램이라면 짧은 준비기간 작업 진행이 더뎌지지 않도록 이를 도와주는 기술적인 풀이 갖춰져야 한다는 데에는 아마 모든 연극원 학생들이 동의할 것이다. 


협업자, 동기, 친구, 파트너…
전문사 연기과 15학번 네 명, 전문사 연기과 17학번 한 명, 예술사 연기과 09학번 한 명 으로 이뤄진 ‹파트너›의 배우진들. 오십여 장의 대본이 무색하게, 세정이 처음 꺼낸 말은 처음부터 ‹파트너›를 공동창작으로 진행할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함께 연극원 과정을 수료한 동기이자 오랜 친구들이 마지막 방학에 무얼 하든지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세정이 섭외한 극단 작은 방의 신재윤 연출은, 그들에게 공동창작을 제안했다. 문제는 ‘무엇’을 창작할 것이냐는 지점이었다. 커피숍에 앉아 한창 고민이 이어지던 중 던져진 화두는 ‘관계’였다. 그렇게 ‘파트너’라는 이름이 그들의 화두로 던져졌다. 

그들은 파트너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를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각자에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지만 중요한 관계, 항상 생각하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파트너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준비해온 자신만의 에피소드들이 이야기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극 중에 등장하는 ‘파트너’라는 배역은 탈을 쓰고 등장한다. 원래는 ‘바야바’와 같은 다소 의미심장한 이름이 있었지만 이내 그 의미를 배우들이 관객의 손에 직접 쥐어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그 이름을 버렸다. 그저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의 삶에 꼭 하나씩은 존재하는 이들로 다가가기를. 관객에게도 그 탈 너머에 있는 자신만의 파트너가 보이기를 원했다. 

오히려 작업 초반에는 ‘파트너’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정리되었던 것 같은데, 진행되면서 점점 명확히 해석하기 어려워졌다. 이는 ‹파트너›의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바깥으로 끌어내주는
또는 나에게 이야기를 심어준 이들

작업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극작의 기본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일단 ‘써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세정은 기본적인 극작에 대해 한계와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가장 솔직한 말을 하자니 무대 위에서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까봐 부끄러웠고, 계속해서 바꾸어도 충분히 정제되지 않고 터져나간 말들이 눈에 밟혔다. 세정은 ‹아버지의 기억 훈련›이라는 대본을 썼는데, 이는 그가 가장 하기 싫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세정의 안에는 아버지가 심어준 관계성에 대한 화두가 있었다. 자기 얘기를 하자니 자의식이 개입하고, 무대 위에서 청승을 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도저히 못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내 이야기를 하니 자꾸 과거로 돌아가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세정에게, 신재윤 연출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정은 해냈다. 이를 해내기까지 3주동안 그들은 줄기차게 ‘대화’를 했다. 이는 세정 외의 다른 다섯 명의 배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직 과거에서부터 무대로 이야기를 완전히 빼오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세정 또한 그들과의 대화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서로에게 느끼는 편안함 덕분에 이를 진심으로 들어주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이야기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세정에게는 파트너가 어떤 의미일까? 그는 ‘내 것을 나눠주는 일’이라 답했다. 이런 답을 알려준 것은 삶에서 깊은 관계를 맺었던 경험들이었다. 물질적인 것을, 혹은 마음을 준다거나, 홀로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거나 하는 일들. 온전한 나의 것이라 치부되던 나의 몸과 나의 시간을 할애해 상대방에게 쏟는 일.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세정은 그의, 그리고 그 역시 세정의 ‘파트너’가 되었다. 


무대 위에서, 
기꺼이 서로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

연극 작업 안에서 ‘파트너’라는 개념은 어떨까? 세정은 작업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결국 ‘피치 못한 희생’이라고 여태 생각해왔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나의 노력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맞지 않는 사람이어도 맞춰가야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업이 흘러가더라도 여전히 마음을 쏟아야 한다. 작업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자기가 원하는 100퍼센트를 실현할 수 없다. 결국 개개인이 조금씩 희생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한편 요즘 들어서는 ‘희생’이라는 단어가 목 언저리에 한 번씩은 걸린다. 우리가 꼭 ‘희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지금 이 단어를 꺼내며 나 또는 내 옆 사람의 감정이 불가피하게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절대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마음을 맞춰보려는 노력, 서로의 욕심을 조금씩만 내려놓고 조율해가는 일이 대단한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희생이 수평적 관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 아닐까, 하는 나의 말에 세정은 잠시 생각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작품을 할 때면 항상 느끼는 바가 있다고 했다. 연극이, 공연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실제 삶 또한 이 정도로 살아내지 못했을 것 같다고. 작품이 잘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곱씹고 반성할 수 있었고, 작품이 잘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차올랐다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맨땅에 헤딩’식으로 시작했는데, 우려한 것보다 굉장히 잘 나온 것 같고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배운다’는 것이 연극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일까. 

‘잘 될 거예요, 여름에도 어쨌든 공연은 잘 올라갔잖아요.’ 하는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핀잔을 준다. ‘에이, 여름 인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니까 좋았지.’ 여름에도 우리는 똑같이 ‘맨땅에 헤딩’이었던 것 같은데. 금세 잊고 웃는 세정을 보며 그는 다른 이에게 참 좋은 파트너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그의 말처럼 ‘피치 못한 희생’을 담보로 한다면,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한 계절쯤은 기꺼이 희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 신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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