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나스튜디오 김경수

한해를 자평하기에는 아직 이른 11월의 오후, 연출가 윤한솔 교수를 만났다. 무언가의 끝 앞에 설 때면, 시간의 구분이 인간의 자의적 단위이며 어차피 우리는 항상 연속되는 시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 때문에 자평 혹은 마무리가 부질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윤한솔 교수의 2018년처럼, 지금도 새로운 도전과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 더욱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 또한 인간의 자의적 판단이라 투정해보며, 매겨지는 숫자를 잠시 멈춘 채 유의미한 방점들을 함께 짚어보았다. 궤적을 발견하기 위해.

2018년의 시작-연극원 교수로서, 예술감독으로서
연극원에 오는 것이 계획에 없던 일이어서, 2018년에 잡혀있던 일정과 맞물려 본의 아니게 굉장히 바빴어요.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는 그동안 연출들이 하지 못한 형식적, 미학적 실험을 기획했어요. 국립극단 선언문의 내용과 형식 안에서 연극과 극장의 공공성·동시대성을 논하고 각자의 작업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지 네 편의 쇼케이스를 진행했죠. 연극원 교수는 독립된 전공으로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르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리같아요. 운 좋게 오게 돼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바쁜 동시에 조용히 지나간 한 해였다는 느낌도 들어서, 올해가 지나가야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단답형으로 답한다면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교육이 실행을 위한 기술과 영감의 영역으로 크게 나뉜다고 보면, 전자는 기술 숙련을 목표로 가르칠 수 있어요. 하지만 후자는 학습에 의해 가능한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자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 그리고 영감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예술교육의 한계이자 해야 할 일이겠죠. 저는 예술이 경험을 확장해서 새로운 소통양식을 구현하는 독특한 사회활동이라 생각해요. 개인이 개인에게, 또는 집단이 집단에 한결 근사하게 보이거나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하는. 그래서 예술교육 또한 한 명의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과 함께 조금 더 아름답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소양을 가르치는 문제 같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나는 가르치고 너는 배운다’는 전통적인 프레임을 벗어나서, 연극 교육 안에서의 관계 자체를 다르게 정립하고 싶어요. 그 대안을 학생들과 함께 모의해야 하는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1984› ©두산아트센터

도전, 그리고 상상할 수 없던 변화
대학원을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후에는 부족하고 엉성했던 연극반에서의 공연과는 달리 좀 멀쩡한 프로덕션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뮤지컬 제작사에 찾아갔어요. 연출부로 몇 년 일하니 프로덕션 경험은 쌓이는데 여전히 연출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고, 이게 정말 내가 하고픈 일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환경을 바꿔보고 싶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뉴욕으로 유학을 갔죠. 학교 2년에 극단 생활 3년을 합쳐 5년간 있었는데 2000년에 9·11 테러가 일어났죠. 집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분진이 날려오는 거리에 살다 보니, 책과 영상으로 숱하게 접한 것임에도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 생겼어요. ‘얼마나 미우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내가 죽으면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지?’ 그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어서 당시 2~3년간은 짧은 시간 가장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했죠.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노트에 ‘얼마나 미우면’을 수도 없이 적었어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얼마나 미우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저 자신이 인간의 본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줄 알았는데, 아무리 미워도 그럴 수 없다는 아주 옅은 바람이 생긴 후 분노와 미움은 중요한 화두가 되었어요. 잘나가는 유명한 연출가가 되고 싶었던 바람이 사라지고 연극하는 이유가 달라졌죠. 그건 제게 상상할 수 없던 변화였어요.

연극을 한다는 것
어떤 예술 장르든 각자 고유한 속성이, 그 장르가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만드는 연극을 필요로 하는 이가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 막연한 믿음이지만. 직업은 일정한 일을 하고 일정한 보수를 받아 삶을 영위하는 것인데, 연극은 그게 쉽지 않으니 독특한 사회활동이라 말하고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우리 삶보다 크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어쩌면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지 않나 기대해요. 저는 극장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풍경, 언어를 경험하며 우리가 서로를 조금 다르게 인식할 때 경이로움을 느껴요. 극단 작업 시에 수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참여한 사람들이 그 과정 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항상 근사한 일이죠. 그런 점에서 연극, 예술을 한다는 건 삶에서 작은 숭고함을 느끼는 일 같아요. 제게 있어 연극을 한다는 건 혁명의 차원이라기보단 현재까지 지속되는 과거들을 조금씩 바꾸는 일에 가까워요. 닫혀있던 창문을 조금씩 여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일에 가깝고, 작업을 통해 열수록 빛과 온도가 점점 절박해지니 마지막에는 다 열릴 때까지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엽적이고 소극적인 이유지만 정치적 책임감보다는 지금 제 머리와 몸이 느끼는 불편이 동력이에요. 늘 이만큼 열었던 창문을 갑자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못 열게 한다면 다시 문을 열고 싶어지는 거죠. 꽤 오랜 시간 연극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해왔고, 시의성이 저를 규정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점을 최근에 실감하게 됐어요.


‹인터넷 이즈 씨리어스 비즈니스› ©두산아트센터

실험성, 난해함보다는 낯섦에 가까이
모든 예술에서 새로움이 일종의 존재 이유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요. 저도 스스로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 질문하고, 관객에게도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를 던지려 해요. 새로운 것을 던졌는데 모두가 이해한다면 새롭지 않다는 반증이겠죠.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관객이 공연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이 생겨요. 그럼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연을 왜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또 이어지는데... 결국 공연 한 편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의사소통 가능성을 제안하고 그에 적극적으로 응하고픈 누군가를 만나는 일인 것 같아요. 난해하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난해가 아닌 낯섦이라 생각해요.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는데, 저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말걸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을 만나고 싶어요.

실패의 후일담
무언가 궁금해지고 의문을 갖는 순간, 그런 자기 관심사를 공동의 관심사로 발전시키면서 대부분의 작업이 시작돼요. 이후 구술증언이나 참고자료를 ‘채집’해 텍스트를 만들고, 장면화할 방안을 고민해요. 그러다 보니 기존의 연출 언어나 관습과는 구조적으로 달라지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10년 이상 작업하면서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데, 그래서 역설적으로 저나 제가 속한 단체의 미학과 고민이 흐트러지지 않았어요. 한 작품이 큰 성공을 거뒀다면 그 노하우를 따랐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매번 새롭게 하겠다는 욕망이 유지되었던 거죠. 저희는 합평을 ’실패의 후일담‘이라고 부르는데요. (웃음) 관객이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말을 걸고 있으니 성공할 리가, 성공할 수가 없는 거죠. 다 알아들으면 의도에 맞지 않으니까, 관객들이 좋아하고 많이 왔다면 정말 대실패인 거예요. (좌중 웃음) 실패의 후일담이라지만 의도를 생각하면 대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는 오독의 여지가 있어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제 작업이 설명되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해요.

창작집단, 협업 그리고 공동창작
학생들에게 종종 얘기하지만, 최근 연출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바쁜 사람들을 한 공간에 다 모으는 거예요. 그래서 매력 있는 작업의 구상과 설득력 있는 과정 설계가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어요. 결국 하나의 이상과 미학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게 어려워졌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연극에서는 일정 기간 같은 구성원들이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과정을 공유하면서 만들어내는 언어와 미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천재가 나와 판을 좌우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그래서 공동체가 지속하며 만들어내는 언어와 미학은 사유하는 방식으로서의 대안, 혹은 다른 패러다임이 될 수 있겠죠. 공동창작은 1인의 혁신적인 작품보다 집단적인 사유가 결론으로 도달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업 양식이니까요. 고전적인 서사와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낯설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아직 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언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연극 경험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되겠죠. 뿐만 아니라 십년 째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도 긍정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봐왔어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비겁하지 않은 유연함, 경직이 아닌 단단함으로.


‹호신술› ©국립극단

2018년, 외적 성취와 내적 고민들
2018년은 제게 중요한 해인 것 같아요. 공무원이 되었고(웃음), 예술감독으로 일하는 등 도전과 고마운 일이 많았어요. 외적으로는 성취한 것들이, 내적으로는 고민이 많은 한해였어요. 미투 이후 일종의 변혁기를 겪으며 질문을 거듭하고 있어요. 솔직하게 아직 마땅한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아요. 과거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 더는 그렇게 읽히지 않고, 희곡 안에서 여성혐오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이건 이전에 남성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학습된 가치들을 부정하는 과정이라 고민이 많고, 선생의 위치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요. 이 논의들이 너무 지치지 않는 시간 안에 발전적인 고민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고, 그 선이 나타내는 궤적으로 무엇의 형상을 확인한다. 여러 시기에 방점을 찍고 일화로 그 점을 연결하며, 더듬더듬 궤적을 짚어나갈 수 있었다. 짧은 대화로 모든 점을 메울 수 없었을지라도, 앞으로의 일화가 그 갈라진 틈을 메워 새로운 궤적을 그릴 것이다. 12월, 윤한솔 연출가는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호신술›을 올린다. 그 또한 궤적에서, 틈을 채우는 하나의 의미 있는 점 혹은 이야기가 되기를.

글 신소원 | 사진 김경수 | 영상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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