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Picasso voyage a Paris pour la premiere fois et s’y installe en onctobre en meme temps que son ami, l’artiste Cosagemas, don't le suicide marque le debut de la periode blueue..

 

 

*한 벽면에 비슷해보이는 세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중 하나에는 ‘2,1,55’ 일자의 사인이 그려져 있었다. 피카소는 12일 같은 날에, 모두들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그런 날에 이전부터 그려온 그림을 완성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같은 소를 다른 모양으로 바꾸는 세 편의 연작을 의도했을까. 그림은 6일과 10일 간격으로 하나씩 완성되었다. 선밖에 남지 않은 황소에게도 같은 양의 그림자를 그려준 것이 눈에 띄었다. 1900년에 죽었다는 그의 친구 이야기를 접하고 나자, 저 소나 소의 그림자 모두 그의 친구처럼 보였다. 그가 붓터치 어디에나 그의 친구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그가 별달리 신경 쓰지 않고서 만든 가이드라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그 전부터 윤곽이 강조된 그림을 그려왔으니까. 어쩌면 후대에 이 그림을 보고 있을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장난을 쳐놓은 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미지를 기대하는지 확실히 알고 난 이후에 생산하는 것들. 나는 50, 60년에 피카소가 그린 것들을 본다. 그런데 거기에는 윌리엄 터너나 르누아르, 모네에게서 보이던 어떤 독특한 종류의 인상은 없다. 그림의 여자들은 르누아르처럼 지루해하지도, 모네의 수련처럼 모든 색을 먹어버리지도, 터너의 흐린 하늘처럼 거장의 색채처럼 보이게 해줄유리가 씌었다는 인상도 없다.

 

 

***나는 43년 이후 시 같은 것은 쓴 적이 없어.’

1895. L'homme à la casquette

그 유명한 천재의 어린 시절, 열다섯에 그렸다는 유화였다. 그림은 상대적으로 작았고 색채 또한 어두웠다. 바로 옆에는 <Maternite>라는 71년에 완성한 그림이 있었다. 컸고, 초록과 잿빛으로 가득했다. 80년의 시간이 30cm의 간격을 두고 걸렸다. 나는 피카소가 어릴 적 배운 대로, 그러니까 1890년대의 붓질로 그리고 싶은,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이후 그에게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스물 한 살 여름, 1901년 여름, 그는 친구 Casagemas의 죽음 이후 진녹빛 수도관 같은 색으로 그의 얼굴을 그렸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피카소의 ‘Bleue’period라고 일컬어지는 시기 역시, 다른 어떤 화풍 보다도 어쩌면 그가 아주 많이 흔들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카소는 1905년부터 여자를 그릴 때 돼지에게서나 찾아볼 법한 분홍색을 썼다. 나는 그것이 여자를 화나게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피카소를 떠났다. 아무리 대단한 예술가의 뮤즈가 된다고 해도, 돼지를 그릴 때나 쓰는 분홍색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것을 참을 여자는 세상에 없기 때문에.

1905, 그날 이후로 그는 더이상 예전 같은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여자가 마지막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정말로 그림다운 그림만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서. 그때쯤 친구는 죽고 여자도 떠나 주었다. 마침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을까.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면 1918년에 그린 Olga의 초상화였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쓰이기엔 너무도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며, 필요 이상으로 친밀한 여자였을지도.

'Those d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 décembre 2015  (0) 2018.06.2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