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잃어버려지기, 하지만 포기하면 정말 편한 지는 미지수.







희곡분석 수업에서 <바냐 아저씨>를 읽었다. 데이비드 불 같은 사람의 이론서와 작품을 연결해서 세 시간 남짓 줄곧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다. 인물은 변해야 한다, 였나 그런 챕터를 읽던 중이었다. 선생님이 물었다.

 

인물은 변하나요? 바냐는 변했나요? 에서 시작된 질문이,

희곡에서 인물은 변해야 할까요? 로 확장되었다.

 

바냐는 변했다, 바냐는 안 변했다 설전이 오갔다. 나는 바냐는 변하지 않았다는 쪽의 편을 들었다. 한 편의 희곡 안에서 인물이 변하느냐는 질문은 결국 사람이 변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작가가 가진 인간관과 작품 내 인물의 변화여부는 동일하다. 나의 경우는 굳이 따지자면 사람은 변한다는 주의에 가깝다. 하지만 희곡에서 설정한 시간 안에서는 그것이 작동하지 않아야 맞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자각해야 변화하는데, 그 자각은 목표로 추구하던 것 혹은 소중하다고 여겼던 것을 잃는 것에서 온다. 바냐의 경우는 가진 것이 애초에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변화하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 걸친 상실과 그에 대한 급작스런 자각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안에서는 자각이 전부일 뿐 실제로 잃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죽거리는 것이 전부였고, 닥치라면 닥칠 뿐이었다. 심지어 그 많은 인물들이 있는 곳에다 총을 쏘는 데 아무도 맞지 않는다. 상당히 시트콤스러운 상황이다. 체홉이 <바냐 아저씨>를 희극이라 이름 붙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연애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명언이 있는데, 실제로 그것은 일대일 관계에서는 진리에 가깝다. 결국 누군가는 누군가를 잃어야 변화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다음 연애에서 조금 달라진 자기를 인식하지도 않나. 나랑은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새 애인을 만나고서 변했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나를 잃었기 때문에 변화하는 것이므로. , 상당히 나에게 유리한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이런 합리화 끝에, 나는 잃어버려지기를 택했다. 자기 인생을 괴롭게 하는 방식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말로 밀어붙이던 것을 관두었다. 그 과정에 내가 동참하고 지속적으로 관여하겠다는 욕심도 내려두었다. 대신 상실로서 변화히기를 바랬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p197-198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소중한 것을 잃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인간관인데, 이언 매큐언도 그것과 유사한 생각을 가진 듯하다. 때문에 <체실 비치에서>의 에드워드는 변한다. 그의 과거와 현재가 마지막 문장에서 만난다. 플로렌스가 에드워드를 상실한 채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루었던 미래, 어쩌면 그 또한 포함되었을지도 모르는 한 폭의 풍경, 하지만 9C 좌석은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소중한 것을 잃고난 후 변한다는 인간관은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현실에서는 그런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잃어버려지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지부진하게 놀지도 못하고, 게다가 상대를 힘들게까지 만들면서 무엇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차라리 그로써 우리 모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 편이 낫다.

 

 


그리고 설령 에드워드가 이 리뷰를 읽었다 해도, 객석에 불이 켜지고 빛 때문에 눈이 부셨던 젊은 연주자들이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화답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1바이올린 주자가 저절로 세번째 줄 중앙의 9C 좌석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알 수 없었으리라, 플로렌스 외에는, 아무도.


p193



애석하게도 나는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배려와 마음씀씀이에 잘게 고마워하고, 별 것 아닌 일에 수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한 문이 영원히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의 생에서 나는 종종 당신을 떠올리며 이상한 후회에 사로잡히리라는 예감을. 더이상 관여할 수 없게 된 관계와 미래 같은 것들에 대해 곱씹으며, 만약 다른 선택을 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공상하게 되는 취미가 생기게 될 것을. 잠깐 내게 닿았던 당신의 말을 오래도록 그리워하고, 전철역 앞에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성이던 당신을 관찰했던 일이 이제는 먼 과거의 기억이 되리라는 사실을.

한때 나는 스스로가 좋은 끝에 이르고 싶어 그를 추구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자면, 결국 나는 끝을 보는 것이 두려워 어쨌든 유보하고 보는 인간이란 뜻이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결국 인정하고야 만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당신과 이것 저것 하고 싶었고, 이렇고 저런 미래도 그려봤어, 어려움이 있겠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극복하게 될 거야. 현실에서 그런 말을 상대에게 전하려면 아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의 상태에 가까워졌다는 자각만 있을 뿐, 사랑한다는 확신은 없다. 그래서 플로렌스의 더듬거리지만 명확하고 빠른 말을 읽어보는 데에서 만족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봤고, 또 생각처럼 그렇게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야. 내 말은, 처음엔 그렇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거야.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어. 이건 기정 사실이야. 우리 둘 다 의심하지 않는 사실이지. 우린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이미 알고 있어. 이제 우린 자유롭게 우리 자신만의 선택을 할 수 있고 우리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 이젠 정말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자유로운 주체들인 거지!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야. 허락받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그들만의 규칙과 기준에 따라서 살 수 있어. 엄마가 동성애자 두 명을 아는데 그들은 마치 남편과 아내처럼 같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대. 남자 둘이, 옥스퍼드의 보몬트 가에서. 그들은 둘 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데 이 사실을 쉬쉬하고 있지. 그래서 아무도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도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 수 있어. 내가 지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내 말은, 바로 이거야. 에드워드, 난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그 누구도, 아무도…… 아무도 우리가 뭘 했고 뭘 하지 않았는지 모를 거야. 우리는 함께 있고, 함께 살 수 있을 테고, 그리고 당신이 원한다면, 정말로 원한다면,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당연히 그런 일이 있겠지, 난 이해할 거야. 아니 그 이상으로, 그걸 원할 거야. 내가 그러는 건 당신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아는 한 절대로 질투하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음악을 연주할 거야.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하고 싶은 건 이것뿐이야. 솔직하게 말할게. 난 단지 당신 곁에 있으면서, 당신을 돌보고, 당신과 함께 행복해하고, 사중주단과 일하고, 언젠가 위그모어 홀에서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곡을, 그런 곡을 당신을 위해 연주하고 싶을 뿐이야.

p 183-184




그리고 이렇게, 또 한 계절을 정리한다.

민선이가 묻는다. 언니, 글이 왜 도피처야?

나는 답한다. 만약에 내가 느끼는 문제들을 삶에서 해결할 용기가 있었다면, 또는 이 세계가 그것을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아마도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났고,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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