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영이 말했다.

 소원 너는 다 보여. 너 말 빨라지는 거 알아? 머릿속에 생각이 다섯 개는 가동되어서 쉴틈없이 말해.”





그녀가 자신의 메시지를 순화시키거나 자기 말이 좀 더 비현실적으로 들리게 할 양으로 일찌감치 생각해두었던 이 대담무쌍한 작은 농담에도 에드워드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바닷가를 등지고 선 판독 불가능한 이차원의 형체였고 전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흘러내려온 상상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기 위해 이마에 손을 올렸다. 불확실하고 떨리는 손동작이었다. 녀는 또박또박 이야기했지만 초조함에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얇아져가는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치는 사람처럼 그녀는 익사하지 않기 위해 전속력을 냈다. 그녀는 맹렬한 기세로 문장들을 쏟아냈다. 오로지 속도만이 의미를 생성한다는 듯이, 덩달아 그도 함께 모순들을 그냥 지나치도록 몰아붙일 수 있고, 또 자신의 의도대로 그를 아주 빠르게 휘둘러 그가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은 빨랐어도 발음이 흐려지진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녀는 절망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은 기운차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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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의 나는 울고 싶어도 잘 울지 못했다. 내가 한두 살 나이를 먹고 있단 사실을 이럴 때에 느낀다. 이전이었다면 억울해서, 화가 나서, 연민이 들어서 같은 이유로 쉽게 차올랐던 눈물을 통제한다. 그런 힘을 터득했다. 아무리 눈물이 나도 울어서는 안 되는 순간들이 점차 많아졌다. 솔직함이 더이상 방패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게 허락된 것은 예의를 다하는 일이지 솔직한 감정 표현이 아니었다. 놀이치료사를 겸하고 있는 중년의 동화 작가는 웜 하트, 쿨 헤드라는 말이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안 됐다는 표정으로, 이따금 팔 언저리를 쓸어 만졌다. 각운이 맞는 단어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 상태가 그 조언에 맞춰져가는 과정인지 따져본다. 쿨 헤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뜨거워져도, 머리 위로는 그걸 보이지 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상태가 몇 시간씩 지속되자 울음을 삼키는 데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문에 늦은 밤 찾아오는 두통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방식만큼이나 나 또한 내 삶을 지키는 진부하고 오래된 방식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주 견고했다. 절대 놓지 못하는 것, 삶 전반에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허락한 것들에는 항상 효용이 있다. 나의 방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또다시 나도 당신들도 지겹고 진부해서 듣기만 해도 미쳐버리는 그 사랑이다-), 관념적인 단어들이나 절대 변하지 않는 우리의 기질 문제 같은 것을 화두로 올려 상대를 괴롭히는 일이다. 실제로 나는 친구들을 만나 그들을 웃기고 울리면서 내 감정을 어느 정도 풀었다. 친구들은 울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울어주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과 나의 기질상 쉽게 행할 수 있는 배려와 마음 씀씀이에 잘게 고마워하고, 별일도 아닌 행동에 가슴 언저리가 휑하게 빈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 수도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어쩐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못했다. 나는 메마른 눈으로 지켜봤다. 속 어딘가에서는 이또한 언젠가 후회하는 순간이 되리라는 불안이 있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

 

사실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아니다, 그렇다고 믿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모든 관계는 일대일에서만 진실이 성립한다. 그 나름으로, 각각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믿음이고, 방법이었다. 세상이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 우정의 정의가 있지만 나는 그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믿음은 여전한 것 같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내 친구들의 행동을 예로 들곤 한다.

이를테면, 소파에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던 내 몸의 흉터에 연고를 발라주던 권의 모습. 나는 여기도, 여기도, 하면서 모든 흉터를 찾아냈고, 그녀는 내 손짓을 따라 연고를 발랐다. 그날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 지극히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절대, 스스로가 지나치게 행복해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시기에 최가 해온 연락들. 그때는 그의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서 언어는 불통에 이르는 도구라고 생각했지만. 후에는 결국 깨달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깊고 낮은데서 첨벙거리는 것이었는지.

, 이제는 언제든 죽는대도 별로 상관이 없다는 나의 말에 분개하던 백의 모습. 그는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내가 죽는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평생을 식물인간으로 살든 말든 사하라에 가든 말든 살려낸 후에도 절대로 용서해주진 않을 거라고 했다.

그것을 사랑이 아니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언젠가 내게 생겼던 물음은 결국 확신이 되었다. 남을 위해 산다는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릴지 알고 있다. 마포구에 사는 힙스터들은 고사하고, 평범한 20대들에게도 비웃음이나 당할 일이다. 너 외롭구나, 너 늙는구나. 하는 말도 들을지 모르겠다. 외롭고 나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실이다. 쿨하기는 쉽다. 사랑하기가 어렵지. 노엘 갤러거가 그런 말을 했었다. 나는 그때 저 먼 섬나라에 있는 노엘을 향해 두손 두발 다 들어 공감을 표했다. 물론 노엘은 모를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그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진실과 그 방식을 전하고 싶어 미친듯이 말을 쏟아냈다. 무언가 미친듯이 말을 쏟아냈다는 사실부터가 이미 불안이 커졌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그래도 전하고 싶었다. 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은 그를 꽤 많이 아끼게 되는 데에 충분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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